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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그렇게 보이는 책이 놓여있어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나중에 살짝 전무님 방에 들어가서 다시 보니까 NIV다.
전무님 밑에서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그게 저에게 practically 도움되는 것은 없겠지만요. 내 평생 요즘과 같이 partner 후보자들를 많이 만나보고 다닌 적이 없었을 정도로, 자주 그런 식의 만남을 가진다
이분법적으로 돈이냐 섬세한 마음 씀씀이냐의 문제라면
후자를 가진 사람을 마음놓고 좋아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는 돈을 택한 것 같다. 돈을 버느라 건강을 해치고 책 읽을 여유도 없고 음악 영화 기타 등등의 교양을 "못" 쌓았다고? 뭐 그런 측면도 조금은 있겠지만 사실은 내가 그 기타 등등보다는 돈을 더 좋아했을 뿐... 온 관심을 기울인 가장 중요했던 문제는 먹고사니즘이었음을 남들이 다 따라가는 대세에 전혀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금의 내 모습은 그동안 간절히 원해 온 총체임을 그래서 돈과 커리어에 밝은 사람보다 그 기타등등에 밝은 사람에겐 단순한 동경을... 생각해보면 난 짝사랑에 빠지는게 너무 쉬운데 그게 짝사랑이 아니게 되는것은 좀 쉽지가 않다
<좋은 점>
웬지.. 인격과 노동이 분리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잖아? (내가 주워섬기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긴 하지만) 도시의 경쟁적인 삶의 구도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잖아? 농작물이 귀엽고 사랑스럽잖아... 자연에 적응하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 외에...(기후변화와 작물 판로등에 대한 고민 말고는) 다른 노력같은 게 필요가 없을 것 같잖아 <리스크> 농업활동을 해 본 적이 없다 도시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농업에 대한 지식도 없다 새로 배워야 하는 일을 택하는 것은... 더구나 좋아할 수 있을지 잘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은 그야말로 도박이다 <그렇다면> 주말농장이라도 가꿔보고, 소위 귀농을 한 사람들이라도 찾아가서 여러가지 물어보아야 하고...
도서관 사서가 되고 싶다는 식의 마음과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아
나한테는 ![]() 어느 나라에서 어느 지역의 농부들의 성격유형을 조사해봤는데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었더랜다 - 인내심이 강하고, 자율적이고, 고독함을 참으며,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데 적응된 성격 - 집단활동을 싫어하는 성격 아... 물론 우리나라 농부는 이런 성격이 아니겠지만(대체적으로, 집단활동을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나라는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논문의 결론은... 농부들에 대한 집단 교육(영농기술 전파나 현장실습 같은 거)이 왜 엄청나게 효과적일 수는 없는가에 대한 일종의 대답 = 농부들 성격상 그런식의 교육이 안 맞는다... 라는 것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디시인사이드 모 갤러리에 실없이 글 하나 올렸다가
댓글 4개까지만 보고 나서 지웠다. 댓글 2개는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지만 나머지 2개는... 감당할 수가 없더라 사실 댓글을 보는 내 반응이 어떨까가 좀 궁금해서 쓴 글이어서 역시나 안 되겠다 싶어, 손쉽게 글을 지웠다. 디시에 올라오는 모든 글과 댓글이 다 쓰레기고 배설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 배설의 홍수를 굳이 대하지는 않는 것과, 보기만 하는 것과, 그 안에서 적극적으로 헤엄치는 건(또는 당하는 건) 정말 차원이 다르다 미사여구성 문장이나 시심에서 우러나온 글에 대하여 처음부터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네이버 댓글에서 퍼옴. 이 글 쓰신분 내공 대단하시다... 다른 댓글읽어봐도 그렇다.
-------------------------------------------------------------------------------- 1. 대출여부, 신용 등급 점검 신용등급을 점검합니다. 한신평같은 신용평가 회사에서 신용종합보고서?.. 이런거 본인이 요구하면 줍니다. 그거 가져오라 합니다. 거기 보면 대출이 얼마가 있고, 카드 빚 얼마 있고 다 나옵니다. 신용 등급도 나옵니다. 빚이 5000만원 이상이거나 신용등급이 5등급이하이면, 가급적 안보는 것이 낫습니다. 인턴 레지던트 하면서도 먹고살만큼의 월급은 나옵니다. 그런데도 신용등급 6, 7, 8등급... 이건 경제 개념이 전혀 없는거지요. 대출이나 카드 연체 많이 했다는 뜻이고, 이는 무분별한 생활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한 무분별한 생활 습관은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전문의 시험 합격해서 봉직의 되어도 초기엔 그리 많은 돈 못법니다.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고요. 이런 방만한 소비습관 가진 분들, 의사되어서도 빚으로 생활합니다. 당연히 가계는 쪼달리죠. 처가집 돈으로 다 쳐막고는 '의사 사위를 두었으면 이정도는 뭐...' 이렇게 당연히 여길 사람들 많습니다. 이런 의사들은 큰집에 살며 좋은 차 끌고 다니지만 항상 빚이 3억- 5억 사이를 유지하다가, 나중에 한번 큰 사건 터지면, 바로 위기국면으로 치닫습니다. 성실한 얘들 중에서도 통장에 예금 10억이상 예치해둔 얘들 별로 없는데, 이렇게 경제개념 없는 얘들은 나중에 패가망신 한두번 하기 전까진 제정신 못차립니다. 방탕한 생활에 돈 몇억 날려, 주식에서 돈 몇억 날려 그러면 앞으로 몇년일해도 빚갚는 것도 벅차니, 처가집에 손벌리는 것만 남았지요. 성실하게 30대에 전문의 따고 10년 정도 근무한 40대 얘들 중에도 통장에 돈 10억 갖고 있는 얘 드뭅니다. 그런데 불과 3-4년에 빚으로 돈 10억 날리는 얘들이 있습니다. 2. 선민의식 없는 얘인지 한마디로 '의사사위 두었으면 이정도는..'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얘인지 꼼꼼히 챙기세요. '의대나왔으니까 나는 정말 잘난 놈이니 모두 날 떠받들어야해'라고 생각하는 놈이 있고, 그렇지 않고 '그냥 의사도 직업의 일종이지. 학교때 공부좀 잘한 것'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자기 잘난 맛 정말 주위 사람에 큰 피해 끼칩니다. 남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요. 마누라가 자기를 떠받들어야 하는 줄 압니다. '너 아니더라도 내 바짓 가랭이 잡은 년이 한둘이었는지 아니?'이런 말 입에 달고 살지는 않더라도 그렇게 생각하며 살다가, 마누라가 조금만 마음에 안들면, '얜 아니었구나. 널린게 계집인데 뭐..'하고 바로 이혼입니다. 왜냐면 실상을 모르고 꼬리치는 예쁜 계집들 의사들 주변엔 항상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의사니까~ 가 중요하다'가 아니라 '내 인감됨이 중요하고 단지 직업이 의사일뿐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인지 잘 판단하고 얘를 고르세요. 3. 진심으로 사랑해서 하는 결혼인지 사랑하지 않고 결혼하면 왜 결혼하는 것이겠습니까? 사랑해서 하는 결혼이 아니면 딸자식 행복하게 해줄려는 마음으로 결혼하는 건 아닙니다. 사위되는 의사놈이 딸자식 행복하게 해줄려는 마음이 없는데 딸자식이 행복하겠습니까? 알약 하나를 꺼내세요. 이 알약은 먹으면 죽는 약인데, 내 딸과 자네 둘 중 하나는 꼭 먹어야 한다. 내 딸에게 주겠나? 자네가 먹겠나? 그때,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저를 어떻게 보고 이런 유치한 테스트를?' 뭐 이런 말 나오거나, '당연히 저는 못먹습니다' 뭐 이런 말 나오면, 그건 끝입니다. '제가 아주 달게 먹겠습니다' 이 정도 말은 나와야 합니다. 진심으로 그런 말이 나와야 합니다. 이 정도 사랑하지 않으면, 그 많은 유혹, 자신의 단점 모두 못 고칩니다. 의사가 대학 들어오면서부터 공부만 해서 사회성이 없고 외곩벽이 있는 얘들이 다수이고, 허영심 선민의식으로 무장되어,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인간관계가 힘든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회화 과정을 대학생활, 직장생활을 거치면서 해나가야 하는데, 결혼생활이 사회화과정의 초기인 얘들... 한마디로 철이 없는 얘들이 많습니다. 이런건 사랑으로 극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4. 스스로의 마음을 어느정도 다스릴 수 있는 얘인지 스트레스 많은 환경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오다보니 성격이 개된 얘들 간혹 있습니다. 혹시 월드비젼이나 유니세프 같은 곳에 기부금 같은거 내는 내역 있는지 알아보고, '인생의 목표가 뭔가?' 이런 가치관 같은 것도 한 번 물어보세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이런 것도 물어보고요. 대답 들으면 어떤 얘인지 대충 답이 나옵니다. 가족, 금전, 성공 이렇게 자기주변의 것을 얘기할수록 자신이 세계의 중심입니다. 세계의 중심이 자신인 사람들 주변 인들은 대부분 상당히 고생합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해답, 사랑, 종교, 신뢰, 우정 이런 것 얘기하는 이들은 그런대로 괜찮은 얘들입니다. 그리고 술을 기울여 봐야죠. 가식인지 알기 위해. 떡이 되도록 먹이고는, 비슷한 질문들을 합니다. 술잔 기울였을 때 본모습이 나오는 경우가 많죠. 자기 통제가 느슨해지기 때문에. 지금까지 딸자식이 사위될 놈에게 좋은 말만 해서 안 맞았지, 극단적 상황에서 사위 비위 거슬리면 딸자식에게 주먹 나갈 놈도 있을 겁니다. 특히 극악의 근무환경에서 오래 근무한 넘일수록 그럴 가능성은 조금 더 높아집니다. 정말 자신을 화나게 해도, 좋은 대화로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가 있는 넘인지 잘 판단해 보세요. 이 사회에도 자신을 화나게 하면 바로 욕하고 주먹 나가는 놈이 있고, 좋은 말로 잘 해결해 나가는 이가 있지 않습니까? 후자가 좋은 놈인 건 당연한 거지요.
1. 설레임은 사라졌다. 올라갔으니 내려오기도 한다.
2. 자아붕괴까지 내려갈 뻔 했는데(며칠전에 퇴근하면서 정신과를 다시 다닐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또 올라오는 내 마음을 보니 신기하고 감사하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음 속에 이런 회복力이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3. "자아붕괴"를 생각하다보니 - 이 세상의 모든 힘겨움, 복잡함, 악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나 싶었다. 관련하여 떠오르는 내용: 신흥종교의 창시자(교주) 유형은 다음과 같다(2011.2.12 한국교회사 연구소 공개세미나에서 들음). (1)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거나 극도의 인생역경을 겪은 사람 (2)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거나 극도의 인생역경을 직접 겪은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의 고통, 남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극히 예민한 사람 => 자기의 문제,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과 탐구의 길을 간다(사회운동에 투신, 여러 종교를 전전, 기타 자기 나름의 구도) 보통 사람들은 자아붕괴까지 가지는 않으니까.. 나도 그렇고... 그냥 잊거나 떨쳐버리거나 극복을 하거나 다른것에 중독되거나 하면서 남들이 다 하는 일상을 흉내내면서 어떻게든지 살아간다. 이 세상의 모든 짐을 진다고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다면... 그건 정말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게 만드는 일... 4. 짝사랑하던 사람이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글을 봐 왔는데 감정을 식게 하는 결정적인 글이 드디어 올라왔다. 나로선 잘 모르면서도 웬지 좋아하고 싶지 않은, 어떤 다른 분을 매우 좋게 평가하는 글이었다. 깨달음: 이 정도를 난 뛰어넘을 수가 없다. 이 사람과 난 맞는 상대가 아니구나.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는 중이었는데. "이 사람"이 해당 글에서 사용한 어떤 단어에는 좀 서운하기도 했다. 그게 그런게 아닌데 왜 모르시는지.... 왜 이해하려하지 않는지. 하지만 남녀간의 문제를 떠나... 이 정도마저 넘어설 수 있다면 나 자신은 좀 더 완전한 사람이 되겠지. 그러나 현재 완전한 인간이 되고 싶은 욕구 < "이 정도"에 대한 혐오 사실 "이 정도"라는 건 별거 아닌, 낮은 허들일수도 있다. 나한텐 어렵고 높은 거지만.. 5. "얘야 하느님께서 널 정말 사랑하시는구나" "네" 뜻밖에 어머니로부터 위로를 많이 받았다. 어머니께 위로받을 수 있을거라고 기대 없이 전화했는데... 거의 전화기를 붙잡고 부흥회를 했다. 6. 원수를 사랑하라, 는 말씀에 대하여 나의 생각: 뜨거운 종교답게... 그 뜨거움의 하이라이트구나. 인간이 할 수 없는 걸 많이도 요구하시네... 어떻하라는 말인지... 지난주 미사 강론: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이 수반되기에 섣불리 사랑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영토를 지상으로부터 천상으로까지 넓힐 수 있습니다. 사랑과 이해에는 고통이 따르나, 마음의 영토는 넓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 -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이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상 사람들도 그 정도는 하지 않느냐,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여라-은 인간적 사랑의 한계를 허물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도 그렇게 성장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십계명->율법-> 예언자 -> 왕 -> 메시아의 순서대로). 사랑은 가장 치명적이고 가장 고통스러운 것을 통해 "증명"해 나가는 과정이며, 숱하게 좌절하는 마음의 몸부림의 과정이 곧 사랑이 아닌가 합니다. "이 정도면 되겠다" 또는 "이것만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라는 그 경계마저 넘게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끝내 포기하고 내놓게 하는 신비가 사랑입니다. 삶은 많은 경계선(내 몸, 내 것, 내 이웃)을 긋게 하고 또 넘나들게 합니다. 어설픈 사랑은 마음의 벽에 갖히고 말지만 진실한 사랑은 몸부림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완전함"이 완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랑은 고통속에서 앓으며 커지는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강론시간 이후: 경계선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내 사랑의 한계를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좀 더 몸부림을 쳐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미사 이후 내 생각: (1) 하느님의 사랑도 고통속에 자라난 것이라니... 은혜스럽다. 그리고 성경을 생각해봐도 맞는 말이구나... (2) 원수란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1) 외부의 원수: 양심의 자유를 지키지 못하게 만드는 법과 사회제도 같은 것, 총과 칼의 압제 및 절대빈곤 등 기본인권과 관련된 부분 2) 내 마음이 만들어낸 원수 3) 절대악이 있다면 절대악: 이건 1)번과는 차원을 달리하겠지. 영적전쟁과 관련된 의미로서 절대악.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에 나오는 "원수"는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예수님께서 1)와 3)마저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다고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2)번에 대해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건 해볼만한 씨름이 아닌가 싶구나! 특히 1)번과 같은 원수와 직접 조우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면 정말 편히 사는 것이고... (3) 사랑의 몸부림이라는 표현은 기독교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사랑의 눈짓, 사랑의 몸짓 그런 시어같은 표현보다 훨씬 원색적이고 뜨겁고 목숨 걸고 하는 느낌. 그리고 오늘 잠시 다음주 주보의 사목단상을 봤는데: 내가 알기론 반세기 전쯤 아마 교황청 금서목록에 오르락내리락.. 할뻔 했던 어떤 책의 핵심주제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아 그래서 지난주에 그런 강론을 하셨구나 이해도 되었고.. 가톨릭 교회에 출석하는 일이 보람됨을 다시 느꼈다...
지금 제 마음이 설레이지만 내일 이 시각에는 어떠할지 모르겠군요. (매우 비참할지도 몰라요)
설레임을 줘서 고마워요. 환상을 보고 설레이는 것일지라도 말이죠. 저는 좀 그런게 필요한 것 같거든요. 그저... 저에게 한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고마워요. 이 고마운 마음으로.. 될수 있는대로 고운 마음, 부드럽고 생채기도 잘 날 것 같은 이 마음으로 아침을 기다려요. 고맙긴 해도 굽신거리고 싶지는 않네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간직하리라, 그러나 부드러운 마음과 맨 얼굴로 나아가 보겠어요.
이메일 주소를 구글에 입력하니, 다음주에 만나기로 한 분의 블로그가 나온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첫번째, 이 분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인터넷에 떠다니는 것에 대해 좀 방임적이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추가할 점은, "첫번째" 가 맞는 명제라 하더라도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글들은 개인 자신에 대한 묘사라기 보다는 관심사에 대한 단순 인용이나 "펌" 정도였기 때문에 어찌보면 공개하나 안 하나 별 차이가 없는 글들이라는 점. 그럼에도 두번째, 이분의 관심사라는 게 뭔지 보고나서 화들짝 놀랐다... 소위 좁은 길일 수 밖에 없는 데 관심을 가지고 계시더구나... 난 포기했는데 그런 거... 하지만 이분은 좁은 길도 가실 능력이 있어 보이기도 하네.
만 서른이라는 시기를 중반이상 지나온 시점에서
서른이라는 나이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생각해본다. 내가 이 나이에 대해 원래 가졌던 생각은, 뭔가 해방이 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이었다. 가족에 대한 의무/도리에 대해서, 이 나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이다. 이기적인 의미로든 아니든 내가 적극적으로 내 자신이 될 수 있는 변곡점과 같은 나이라고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은 1) 우리나라 세법에서 만 서른이 가지는 어떤 의미와 2) (얼토당토 않은 연결이지만) 만 서른 이후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었다는 점 으로 뒷바침이 되기도 했다 만 서른 몇개월을 지내보니 단지 나이가 얼마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내가 변화된 점은 확실히 없지만, 서른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몇가지 저질러본 일들에 의해, 결과적으로는 이 나이에 대한 기존의 의미부여가 상당히 퇴색되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절대로 싫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사실 좋아하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고 그 반대로도 말 할 수 있고 등등. 이제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의미부여 - (맥락은 잘 이해를 못하면서 기억하는 문구) 마흔 살 무렵이 되면 지나온 인생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하게 되며 젊은 날에 자신이 왜 그러했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인생의 제2막이 열린다, 는 정도의 문구 by 융 삼십대인 니네들이 벌써부터 힘이 빠져 있으면 어떻하니
예비신자 교리서를 받자마자 읽어 볼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찌되었든 한번 읽어보기나 하자 하고 한번 주르륵 읽었는데 이거 예상했던 것보다 재미있고, 설득력이 있고, 은혜가 되었다. 마치 "바로 이게 가톨릭이다"에 대해 무척 세심하게, 모든 독자들의 수준과 필요를 최대한 고려하여 쓰여졌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새로 입교하는 신자들에게 자랑스럽게 내 놓을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만한 품질의 기본 교리서를 제공하는 개신교단이 지금 우리나라에는 없을 것만 같다... 내가 알고, 짐작하는 범위 내에서.. 근데 이런 "품질"은 사실 조직에 기반해서 형성되는 측면이 있다... 즉 천주교회라는 "교단"과 일개 개신교단이 교단 대 교단으로 붙으면 어디가 조직적 기반에서 누가 더 우월하겠는가 말이다. - 사실상 개신교회의 교단기능은 개교회 신자들에게 유명무실하지 않은가 말이다. 즉 이 경우 사실은, 교단 대 단위교회의 비교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성당에 한번 다녀보기로 한 거 정말 잘한 결정이었어 그런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책이었다. 이상의 생각을 하면서 교리서를 읽고나서 그 다음주에 교리반에 들어갔는데(1월 말이었고 11주차였다) 반전은, 이 책에 대한 주임신부님의 약간의 평가절하였다(수녀님의 전보발령으로 신부님께서 교육하심). - 이거 무슨 말인지 알아먹겠어요? 너무 어렵지 않나요? 더 헷갈리게 만들어버리지 않나요? - 이런 책 보면서 공부를 하다니 여러분 참 대단합니다(거의 빈정거리는 뉘앙스!). 속으로 이거 참 시험들게끔 만드시네... 왜 저런 말씀을 하신담 그랬는데 "더 헷갈리게 만든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다음과 같이 미루어 이해했다. - 이 책이 아무리 공식 교리서라 하더라도 이 책에 담긴 어떤 내용, 이 책의 어떤 관점에 본인이 동의를 안 하시거나.. 기술방식에 만족이 안된다는 뜻 같다. - 또는 저자를 별로 안 좋아하시거나... - 소크라테스 식 대화법이 저분의 의사소통 스타일인가? 다른 분들은 그러실지도 모르겠는데... 난 이 책이 참 좋은데. 저자분도 좋고... 하지만, 교리책을 무시하고 주제와 내용을 거의 완전 재구성을 해서 진행된 그날의 교리수업도 좋았다. - 이 글을 쓴 다음 좀 더 생각을 해보니 저 파란색 글자 부분은, 어느정도는, 내 생각이 투사된 "이해"였던 것 같다.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는 것 묵상하는 것 (더 나아가 관상하는 것 까지 가능하다면 그런 것도)
처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 수행하는 사람에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요즘은 이상의 것들이 기쁘게 느껴진다는 것 자체가 "기쁘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선 이런건 혼자 즐기는 형태의 신앙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떠오른다. 좀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문을 닫아 걸고 하는 자위행위에 불과한 형태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변론으로서는 난 회심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지금 내가 누리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라도 잘 하자는 얘기를 할 수 있다.
방금 먹은 것들은 상당히 과한 분량인데 지난 5일간 굷은 걸 생각해보면
이정도는 일주일에 한번정도 먹어줘도 괜찮겠다 싶었다 이례적으로 커피를 많이 마신 한주였다. 커피믹스를 하루에 한잔씩 마셨고 지난 5일간 카라멜 마키아또 같은 걸 세번 먹었다. 차 종류도 많이 마셨고... 매 끼니는... 점심은 든든히 먹은 편이고 아침과 저녁은 삶은 계란, 찐 감자, 두유, 사과를 먹었으니 이만하면 절제한 거라고 봐야된다. 커피믹스와 카라멜 마키아또 같은 건 좀 줄여야 되는데 뇌가 그 단맛에 단숨에 길들여져서 걱정이다.
금요일의 특식
방금 먹어치운 것들 1. 계란크기의 삶은 감자 1알: 라면을 끓이면서 2. 라면 - 맛있는 라면 3. 밥 1/2공기 4. 김치 5. 삶은 계란 1개 6. 초코칩 쿠키: 155 kcal 정도되는 분량 아 배부르다... 퇴근시간이 가까이 오면서 계속 라면 생각을 했고, 드디어 먹었다. 이제 천천히 집안일을 좀 하고 운동하러 갔다가 묵주기도 드리고 성경을 읽을 것이다. 내가 금요일을 즐기는 방식이란게 참 심심하구나. 단출하고 외로운 금요일 저녁이라고 생각되지만 뭐... 만족스럽다.
생각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그 어떤 생각이라도.. .... 근데 여기서 방점은 사실 얼마나 신성모독적이고 음습하며 지독한 상상이나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경지(의 열거)에 있지 않고 "그래도 좋다"는 허락...에 있다. - 뭐 그냥 문득 숨통이 틔이는 것 같은 해방감을 느껴서 써 본다
내가 갑자기 신앙생활에 열중하게 된 것은 아마도 때가 그렇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귀하다. 손아귀에 쥐어지는 모든 좋은것들이 모두 다 결국은 스쳐지나가게 된다는 것... 을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 했다가 다시 찾긴 했는데 인큐베이터에 들어있는 아기처럼 이 곳을 무척 사랑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애착도 느끼지만 결국 이게 영원히는 유지 안될 거라는 걸 내다 보면서(미리 걱정하면서!) 이게 끝날 때까지는... 즐기고 싶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 이상의 생각을 버리기가 무척 힘든 가운데 며칠전에 요한복음 4장을 읽으니 많이 위로가 되었다.
어제의 복음서 내용이다.
아침에 한번 읽었고 저녁 때 한번 더 보았다. 소금은 그렇다 치고 빛에 대해서는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그동안 내게 익숙한 패턴(성경을 읽을 때)이었는데 - 어둠이 있으니까 빛이 있을 수 있는 거지... - (마음속) 빛을 밝히되 그 빛만큼 어두움도 깊어지지나 않을지 걱정된다...(이런 얘기까지 나와줘야 뭔가 완결이 된 느낌인데) 일단 혼자 읽을 때는 무조건... 이상과 같은 회의와 염려는 덮어두려고 애를 써서인지 저기까지 닿지는 않고 묵상을 마쳤다 빛과 어두움의 상대성과 끌어당기는 힘에 대해선 별 주의가 안가고 대신 눈에 들어온 부분은 - 그리하여 너희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여라... 이 부분이다. - 그게 빛이건 소금이건... 종교를 떠나 일반 상식과 세상의 정의론에 비춰봐서도 감동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읽혔다. - 이에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은, 몇몇 내 친구들은 종교란 걸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빛과 소금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보통의 종교인들에 비해 스승같이 느껴진다는 점... 원래도 좋은 친구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신앙을 떠나 참 훌륭한 친구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면서 스스로가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상의 혼자 생각을 마치고 나서 열몇시간 뒤 미사에서 들은 강론 중 일부 - 왜 주님은 온 세상보고 소금투성이 빛 투성이가 되라고까지 하지 않으셨는지 생각해봅시다 - 비유에서 소금으로 음식의 맛을 낸다고 하셨지만 소금으로만 절여진 음식은 맛도 없으며 먹을 수도 없게 됩니다 - 방부제인 소금에 절여지면 썩지도 않습니다(생명도 없습니다) - 세상의 자유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 우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소금자체가 되라는 게 아니라) 다 듣고 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기도 하고... 상당히 참신하게도 다가오고(이건 나중에 주보 2-3페이지에 실린 동일한 복음서 내용에 대한 글들을 보니 더 그렇게 느껴짐) 이 정도에 닿는다는 것은 얼마나 깊히 묵상을 한 결과이겠는가, 그런 생각도 떠오르고 빛이 어두움을 더 끌어들일까봐 두렵다는 생각도 다독여지며 소금과 빛의 외연에 대해서도 묵상을 해도 괜찮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안심도 되고 좀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씀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위험선상까지는 닿지 않는다) 성경의 파라독스적인 면과 상통한 강론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아침에 미리 묵상을 하지 않았다면 이상의 강론이 별다르게 참신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사실은 어제가, 내가 이 성당 다니기 시작한 이후 최초로, 강론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 마음을 기울여 집중해 본 날이었다. (이런 날이 왔으면 했지만 사실 여기에 대해 큰 기대가 없기는 했었다... 근데 지금은 목마른 가운데 갑자기 물을 한컵 받은 느낌이다. 좋다..) 어제는 눈을 감고 들었는데... 앞으로는 눈을 감지 말고 필기를 하면서 듣는게 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오래된 순서대로 앞의 2명에 대해서는 뭐 그리 마음의 부담없이 인터넷을 검색해 볼 수가 있다만
(페이스북과 네이버의 힘을 빌어) 뒤의 2명에 대해서는 검색을 하고 싶지가 않다. - 한명은 이름을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극복이 안 되었고(이름이 뭐였더라 생각을 하려다, 기억이 떠오를세라 생각을 얼른 접는다) - 다른 한명은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놈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그에게 고마운 점이 몇개가 있긴 하지만... 그... 이름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은 위의 4명중 내게 가장 깊은 흔적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아직도 극복이 안 되었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오늘 맥으로 읽는... 강의를 끝까지 봤는데 중간중간 그 사람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었는지 떠오른 점도 있고 그렇더라. 어떤 식으로 말하면 이 강의를 이해하는 힘을 길러준 셈도 되고... 하지만 쓸데없는 풍부함이지. 별로 알 필요는 없으나 알게 된 것. 아 참 먼 길을 통과해서 여기에 내가 다시 왔네... 그런 생각을 했다. 결국 아직까지의 내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이제는 출발, 앞으로! 좀 해보자... 어느덧 시간은 흘러가고 있지 않으냐.
밤이 되어서야 이런 걸 들을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하나 들어보다가... 5개를 내리 들었다.
그리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처음에는 누워서 보다가 중간쯤 부터는 일어나 앉아 필기하게 되었다. 4강과 5강을 필기했는데 7페이지 반이 나온다. 1. 오 그래 내가 이런 강의 들을려고 가톨릭 (예비)신자가 된 거다. 아주 만족스런 선택이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의지적측면을 보자면 말이다) 2. 여러가지 와 닿는 부분 - 미래의 정보(예언류)를 굳이 미리 알려고 하지 말아라: 교만과 나태의 부작용. -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였느냐" : 마르코복음서에 17번씩 나옴. 맥락은 지식이 부족함을 탓하는게 아니라 '제자들의 삶이 바뀌지 않았을때'의 탄식. - "아직도 알아듣지 못하였느냐", "나를 따라오너라", "이미 부활하신 분을 무덤에서 찾지 말아라(갈릴래아로 가라)" - 오늘날 우리를 향한 말씀 - 주님께서 명하는 본질(복음을 전파)을 지키는 자: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신다 - 행복은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이며, 하늘나라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를 '발견'하게 해주신다(보라! 어떠한지..) - 사력을 다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해서 자기 영혼을 구원하라: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 5강까지 듣고 나서 인터넷을 뒤적하다가 몇년 전 차 신부님 신문기사를 봤는데, 그중 또 마음에 남는 것들: - (ㄷㅇ이) 가톨릭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ㄷㅇ은 수도 없는 범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것은 개신교계의 교단현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그리스도교의 교의에 트집을 잡으려는 의도에서 발견된다. 개신교계의 문제는 교의가 잘못되어서 자행되고 있다기 보다는 실천적인 측면에서 잘못되고 있는 현상이다. 실천을 지적하려면 교의를 존중하는 가운데 지적하려는 예의, 즉 에티켓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톨릭이 직접적인 비판대상이 아니라는 그의 말을 십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가 개신교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흔들어놓는 성격 해석의 방법론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뿌리에서 가톨릭의 신학을 함께 건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 때문에 가톨릭은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행동을 보면 그리스도교를 긍정적으로 비판한다는 명목하에 자신의 우주관 내지는 종교관을 홍보하려는 저의가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 - 그리스도교는 역사에서 나무나도 많은 증오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스도교는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를 범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전체가 오류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안의 일부 지도자들이 죄와 실수를 범하였다는 말이다. 이점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운 세상의 종교는 아무것도 없다. 잘못은 잘못이다. 이에 교회는 수없이 회개하면서 쇄신해왔다. 역사의 종말까지 이 과정은 지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악의 세력이 교회안에 침투하여 췌방하는 일이 중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ㄷㅇ이 범하는 논리적인 실수는 언제나 한 면만 보고 침소봉대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용감한 폭로자가 아니라 비겁한 트집쟁이에 가깝다. 어둠과 빛을 동시에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양심가다. 이상의 밑줄친 부분에 대한 나의 짧은 감상... 1. 사실 내가 교회가 그토록 진저리나게? 견딜수없이? 싫어서 대안적으로 성당을 다니기로 했다 해도... 이게 성당을 다니기로 결심하는데 정당한 이유인지는 정말 자신이 없는 것은.... 밑줄 친 바 대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리에 큰 차이가 있다고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나한테는) 그렇다면 내가 왜 교회를 싫어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경험적인 부분에서 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걸 사실 별로 적당한 이유로 내세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양심상 말이다! 칼같은 양심을 들이대자면! 현상적이고 실천적인 부분 때문에 본질까지 싫어질까봐 두려웠다... 는 말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 요즘 꽤나 많은 ex개신교인들이 성당으로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개신교의 현상적인 모습에 대해 비판을 하지만... 그 비판을 하며 교회를 떠난 사람보다는 어떻게든 자기 신앙의 원천에서 개선의 노력을 하는 사람이... 더 귀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못하니까 내가 지금 이렇긴 하다. 2. 성당에 제 발로 걸어온 면도 있고... 성령의 이끄심도 있었겠지만... 내 의지적측면에서 왜 성당이 좋은지에 대하여 - 일단 가톨릭이란 단어의 의미가 마음에 든다: 어찌되었든 본류이며.. 총본산이며 기타 등등 - 본류라서 좋은 점은: 긴 역사와 전통은 곧 쇄신과 적응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와 전통 그 자체보다는 그 이면의 쇄신, 그리고 넓은 (때론 모순적인) 저변에 관심이 간다. 예를들면 논리성을 갖춘 신학과 신비주의가 이 전통안에 각자 발현해왔고... 타 문화권의 전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도 정말 많은 논쟁을 거쳐왔고 ...어찌나 타락했으면 종교개혁씩이나 겪고 그 많은 평지풍파가 있었겠으며... 그럼에도 불구 가톨릭은 살아남았다. 이 풍부한 자료 앞에서 새 신자로서 갑자기 의욕에 불이 댕겨지며... 많이 배우고 싶어진다. - 그래서 가톨릭은 전통을 수호하려는 점에서는 보수적인 성격도 있지만 그동안 무척 많은 쇄신을 해왔기 때문에 상당히 관용적이고 열려 있다고도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일반적? 교회의 가르침에 비하여 성당에서 듣는 이야기들은 상당히 덜 배타적으로 들린다... 여성사제 임명문제 동성애 인정문제 낙태권리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도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 난 지켜보고 싶은 편이다. - 본당 사제님들과 수녀님들의 순환근무제가 장점이 많은 것 같다. 사제 개인의 능력? 보다 조직이 앞세워지는 것도... 좋아 보인다. - 현재까지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교회를 다니면 소위 유명한 목사님을 찾아다니면서 신자 본인이 선택하여 특정 설교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내 말은 주일 설교 내지는 강론에 대한 아쉬움이고... 이것도 사실 내가 극복해야 할 점인것 같다. 은혜로운 미사를 드리는 것은 어떤 신부님의 강론을 듣느냐에 그렇게 좌우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 작년말부터 성당에 자꾸 가보고 싶어하는 날 보고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시는 어머니께 드린 말씀 - 무슨 우상숭배니, 제사를 허용한다느니,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는 문제니 그런 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제 생각에 그런 논쟁은 신앙의 본질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대답을 못하셨는데, 내 마음을 이해하셔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내가 너무 단호하게 말씀을 드려서 그러셨는지.. 하지만 분명한건 성당에 다니고 싶다는 딸이 그래도 서운하시긴 할 거라는 점이다. 아니라고 하셨어도 말이다. -------------------------------- 지난주일에 어머니께서 그렇게 권하시던 O 교회 청년부 예배에 갔었는데... (가서 한시간 넘게 앉아있다가 그냥 나왔다) 일단 교회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거부감이 확 올라왔었다 - 선교확대가 2011년도의 목표라고 크게 적혀 있었는데 선교, 좋은 말이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여기 순명해야 할 것이라고 머릿속으로는 이해를 하지만 그땐 왜 그렇게도 싫은 느낌(얄팍하고 강요적이란 느낌, 그 자체로 좋아보이지가 않고 뭔가 파워게임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그러면서 방금 인터넷으로 들은 차 신부님 강론에서 "전도는 예수님의 가장 본질적인 명령"이라는 말씀이 나오면 왜 또 거부감이 안들었는지...
예비신자 반에 등록해 있다. 세례는 부활주일에 받게 된다.
오랜만에 신앙생활이란 걸 하려다 보니... 설레임도 있고 두려움도 있다. 설레임이란 - 뭐든지 새로운 것에 꽂히면 열중하니까. 그리고 신앙생활 안 하다가 다시 하려니 예전의 그 마음이 다시 찾아오는 면도 있고 두려움이란 - 1. 왜 다시 신앙생활인가에 대해 똑부러진 대답을 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의지로 여기 온 것이 아니라 부르심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왔다는 생각을 한다. 2. 그래도 의지적인 측면에 대해 걱정이 있다. 내 믿음의 부침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신앙의 사이클이 올라가고 있다 해도 이게 언제 어떻게 내려갈지 벌써부터 걱정을 한다. 앞으로 어떤 교훈을 얻을지 어떤 이끌림을 받을지... 이번주는 이틀 빼고 미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일이 아닌 때에 미사 참석하기란 쉽지 않으니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해보련다. 성경공부 모임도 참석하고 싶고 피정도 참석해보고 싶고 기도하는 방법론도 배워보고 싶고 요즘 좀 불타오르고 있는데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준비를 해 나가고 싶다. 일단 세례부터 받고 나서... 그 전까지는 천천히다. 사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성경을 읽어볼까 하고 마태오 복음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한시간만에 다 읽어버렸다. 앉은 자리에서 복음서 한권을 다 읽을 생각으로 펼친 건 아니었는데 그리고 빨리 읽고 싶지도 않았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네... 천천히 하자 천천히. 휙 읽고 난 느낌: 익숙하지 않은 번역이지만 이 번역을 매우 좋아하게 될 거 같다. 쑥 빨려들어가면서도 거리감과 질문을 유지하면서 읽을 수 있는 정돈된 느낌의 번역이다. (빨리 읽으니까 이런 정도의 감상밖엔 안 드는구나)
그렇게도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애써주시는 어머니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교회를 못 다니겠습니다. 다니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저도 제 자신을 어쩔 수가 없으니 서운하다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쉬운 하나님만 또는 어려운 하나님만 믿으려고 한 것도 아니에요... 저를 좀 이해해 주세요. 성당을 다니겠습니다. 그쪽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요. ------------------------------- 효도하기 위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도 교회를 나가자 그런 생각도 해보았는데 어려웠다. 부모님 형제자매와 같이 신앙생활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난 왜 이리 고집이 강하고 날 굽히기가 어려운지... 조금 가슴이 아프다. 예전에는 이런게 가슴 아프지도 않았었는데... 이건 발전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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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하세요
by 미니 at 07/03 헉... 충격적이네요.... by ㅠㅠ at 03/09 우연히 검색어 통해서 .. by 히히히 at 10/29 매염방은 주윤발을 좋아.. by 김양념 at 08/15 첨에는 그럭저럭 별 느낌.. by 모자 at 07/12 왓에버님 안녕하세요 ^.. by constructi at 03/28 순간 마지막에 제 닉네임.. by 왓에버 at 03/28 괜찮습니다.. 채팅방 .. by constructi at 05/23 오늘 학교에서 DVD로 .. by dksrntifka at 02/13 딱 절반은 저랑 똑같은 .. by 50% at 01/31 최근 등록된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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